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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으로 6회를 맞은 문지문학상의 다섯 번째 수상작품집이다. (애초에는 『웹진문지』 오픈과 함께 ‘웹진문지문학상’으로 시작되었으나, 2013년에 문학과지성사 홈페이지의 블로그와 웹진이 통합되면서 2014년부터 ‘문지문학상’으로 개칭되었다고 한다). 문지문학상 수상작품집이 기존의 여러 ‘OO문학상’이란 이름을 단 수상집들과 다른 차별성은 크게 두 가지를 들 수 있을 것 같다. 첫째, 등단 10년 이내의 작가들의 신작을 대상으로 한다. 둘째, 한 달에 한 번씩 ‘이달의 소설’을 통해 후보작을 선정한다. 첫번째 특징으로 인해, 이 수상작품집에 수록된 작가군이 문학동네의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에서 선정되는 작가군과 비슷하게 겹치는 부분도 있기는 하지만, 교집합 이외의 부분은 선정위원들과 출판사의 성격에 따라 해당 상의 색깔을 또렷하게 보여주는 듯하다. 가령, 이번 수상작품집에 수록된 김덕희라는 소설가는 이 작품집을 통해서만 접할 수 있는 작가이다. 이러한 점은 “우리 시대 문학의 고독한 자기 갱신 작업을 생생히 증언하고 거기에 기꺼이 동참하려는 의지를 확인하는 통로가 되는 상”이라는 이 상의 취지와도 걸맞은 부분으로 보인다. 두번째 특징은 문지문학상만이 갖는 고유한 특성이다. 한 달에 한 번씩 ‘이달의 소설’을 선정함으로써, 그때그때의 현장을 가장 발빠르게 캐치하고 민감하게 반영할 수 있다. 그리고 이렇게 다달이 선정된 후보작들 중에 수상작을 고르는 과정 자체가 선정위원들과 이 상의 성실성을 입증해준다고 생각한다. 마지막으로 이 상이 가진 특징을 하나만 더 꼽자면, 선정위원들이 모두 평론가들도 구성되어 있다는 점이다. 다른 ‘OO문학상’의 경우 예심이나 본심에서 원로나 중견으로 분류되는 소설가들이 심사위원으로 관여되는 것과는 달리, 문지문학상의 경우 우찬제, 이광호, 김형중, 강계숙, 이수형, 조연정, 강동호(잘은 모르겠으나 모두 『문학과사회』편집동인들인 듯하다), 이렇게 일곱 명의 문학평론가들이 수상작을 선정한다. 물론 이에 따른 장점과 단점이 있을 수밖에 없겠지만, 한 가지 확실한 건 이를 통해 소위 ‘문지스럽다’는 고유한 특성을 보여준다. 이하는 이 수상집에 수록된 열두 편의 소설에 대한 간단한 평이다. 소설가나 작품의 스타일을 잘 보여준다는 판단에 각 소설에 기록된 작가노트와, 각 소설에서 임의로 고른 한 두 문장도 첨부한다. 윤이형, 「루카」 간단평 윤이형은 이제하 작가의 딸이다. 그래서만은 아니겠지만 작가들 사이에서도 많이 사랑받는 걸로 알고 있다. 처음부터 자기 스타일이 분명했고, 뚝심있게 그걸 밀고 나가는 작가이기도 하다. 작가가 이 작품을 통해 던지려는 문제의식이 뭔지도 알겠고, 작품의 구성이라던가 완결성도 흠잡을 데가 없다. 그런데 이상하게 나는 별로 끌리지 않는다. 작가노트 빛을 향해 가고 싶지만 빛을 알아보지도, 똑바로 바라보지도 못하는 어리석은 마음으로썼다. 그래도 어둠이 조금이나마 덜 어두워 보일 때는 우리가 누군가를 사랑하는 순간이라고 생각하는데, 사랑이 아니라 사랑을 닮은 무언가만 나는 계속하고 있다. 아무도 다치게 하지 않으면서 세상을 살 수는 없다. 언제나 누군가의 뼈는 상한다. 깨닫기는 했으나 나는 모른 척하고 싶었다. (p.31) 이장욱, 「기린이 아닌 모든 것에 대한 이야기」간단평 작년에 나온 이장욱의 소설집 제목을 이 소설에서 따오기도 했거니와, 이 소설은 워낙 여기저기 문학상 후보로 많이 올라가기도 해서 여기에 수록된 것을 읽기 전 최소한 다섯 번 이상은 읽었던 것 같다. 그런데도 매번 읽을 때마다 긴 여운이 있다. 이장욱은 시, 소설, 평론 모든 영역에서 자신의 입지를 굳건히 하고 있다. 고도의 집중력과 꾸준한 지구력이 없다면 불가능한 일일텐데, 늘 감탄할 따름이다. 작가노트 심야 택시가 동부간선도로를 질주할 때, 긴 목을 하늘거리며 한 마리의 우아한 기린은 도로를 횡단하였다. 기린이 잠시 고개를 돌렸다. 나는 그의 무심한 눈망울을 영원히 기억하였다. 정지돈, 「미래의 책」간단평 이 소설을 선정하며 우찬제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미래의 책’이라니? 모리스 블량쇼의 제목을 과감히 자신의 소설 표제로 삼은 신인 정지돈은 과감하다. 혹은 무모하다. ‘현재의 책’도 구성하기 어려운 터에, 하물며 ‘미래의 책’이라니.” 이상우와 더불어 ‘후장사실주의자’인 정지돈은 한동안은 주목해서 계속 읽고 싶은 작가다. 어떤 의미에서 보자면 지금 시점에서 ‘후장사실주의자’들이 가장 ‘젊은’ 작가군이라고 할 수 있을테니까. 작가노트 근대 이후, 집을 짓는 사람과 거기에 사는 사람 사이에 괴리가 생겨났다. 하지만 원래 집을 짓는 사람과 사는 사람 사이에 거리는 없었다. - 토요 이토 싸한 촉감만 남기고 증발해버린 알코올처럼, 꿈은 흔적만을 남긴 채 어둡고 음습한 공기 속으로 숨어버렸다. (p.120) 나는 생각했다. 밤이, 자신이 삼킨 꿈을 토해내듯 그렇게 바람이 불어온다고. (p.120) 이상우, 「888」간단평 정지돈에 이어 오한기를 읽은 후 이상우를 읽을 날을 고대했는데, 드디어(?) 이상우를 읽었다. 이 한 편으로 이상우의 소설을 평가할 수 없겠지만, 이 소설만 두고 보자면 이 소설은 요약이 불가능하다. 우찬제가 이 작품을 ‘소설’이라 지칭하지 않고 ‘텍스트’라고 지칭한 이유이기도 할텐데, “새로운 문학의 영토로 탈주하면서 부단히 틀을 부수고 새로운 문학의 몸을 형상화하면서 동시에 부수는 놀이, 그 놀이 과정에 매설된 다채로운 코드들을 풀어보면 이 텍스트를 참아낸 보람을 느낄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우찬제의 평가를 간단평으로 대신한다. 강조점은 ‘~있을지도’이다. 호불호가 확실히 갈릴 수밖에 없는 작품이라고 생각하는데, 이 작가의 개성은 작가노트에서도 여실히 드러난다. 솔직히 거기서 빵 터졌다. 왜 나는 이런 사람들에게는 한없이 관대해질까 작가노트 작가노트는 사라져야 한다. 주짓수 도장으로 가는 길에, 내가 문학을 참아내고 있는 것인지, 문학이 나를 참아내고 있는 것인지 고민했다. 둘 중 하나는 다른 하나를 참아내고 있을 일이니까. (p.152) 김덕희, 「급소」간단평 기존의 소설 문법을 잘 따른 전형적인 소설이란 느낌인데, 이 한 편만으로 작가를 충분히 알 수는 없는 법이니, 앞으로도 꾸준히 소설을 쓰면 좋겠다. 적어도 한 권의 소설집이 묶어 나올 수 있을 만큼의 긴 시간 동안. 작가 노트 진짜 괴물을 향한 무거운 무력감, 짙은 열패감이 해소되지 않으니 한낱 짐승에 불과한 늪돼지가 대신해서 괴물이 되어야 했다. 늪돼지 앞에선 애 어른 할 것 없이 모두가 용맹했다. 생각해보면 내가 엄마의 지갑을 건드린 적이 없다는 건 중요하지 않았다. 엄마는 그냥 외로웠을 뿐이었다. 엄마는 술에 취하면 늘 외롭다는 말을 했다. 외롭다는 건 깨고 부수지 않으면 사라지지 않는 기분이었다. (p.177) 나는 엄마가 분명히 나를 사랑하지만 내가 모르는 무엇 때문에 그 사랑을 이상하게 표현하고 있다고 믿었다. 엄마가 나를 때리다 우울한 얼굴을 하고 앉아 있으면 나는 조용히 엄마에게 가 안겼다. 그러면 엄마는 날 안아줄 때도 있었고 밀쳐내고 방으로 들어가버릴 때도 있었다. (p.177) 달이 마치 노란 고름 덩어리 같다. 부기가 빠진 보름달인데도 손전등이 필요없을 만큼 세상이 환하다. (p.178) 정용준, 「개들」간단평 작년에 나온 소설집 『우리는 혈육이 아니냐』에 수록된 작품이다. 즉, 이미 단행본으로 엮어 나온 소설이다. 이 작품 역시 이장욱의 「기린이 아닌 모든 것에 대한 이야기」처럼, 이미 여러 곳에 수록된 적이 있어 적어도 4-5번은 읽은 듯하다. 많이 거론되고 언급된다는 측면에서 보자면 이장욱과 더불어 정용준 역시, 가장 활발하게 활동하는 소설가로 꼽을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정용준의 소설들을 읽다 보면 도스토옙스키가 생각나는데, 이 작품 역시 그랬다. 청각적으로 개 짖는 소리가 소거된 대신 후각적으로 개 비린내가 진동하는 소설이다. 이수형의 심사평 중 일부를 남긴다. 내가 느낀 지점과 정확히 맞닿아 있었기 때문이다. “사회에 대한 최초의 반란이 아버지 살해라는 극단적인 형태를 띤다는 것은 그 사회가 만인의 동의 아래 이루어진 나름 정상적인 공동체가 아니라 폭력과 강압에 의해 가까스로 존립하는 위험한 상태임을 뜻한다.” (p.220) 작가 노트 철창을 사이에 두고 개를 바라보고 있으면 묘하게 ‘개 같은 기분’이 든다. 개에게 사과하고 싶다. 조해진, 「번역의 시작」간단평 이 소설집에만 해도 조해진의 소설이 두 편이나 수록되어 있다. ‘OO문학상 수상작품집’이란 이름을 달고 나온 여러 책들에서도 종종 이 작가의 작품들을 읽게 된다. 그런데 나는 솔직히 아무 매력을 못 느끼겠다. 모범적인 소설이란 생각은 드는데, 어떤 끌림도 없다. 최근에 처음으로 이 작가의 (경)장편을 읽었는데, 거기선 그래도 몇 군데 반짝반짝 빛나는 부분을 발견했다. 작가 노트 미국 중소 도시 세인트루이스에서 지내는 동안 눈에 각인된 이미지들로 썼다. 내게는 앨범으로 번역되는 소설인 셈이다. 공항에 도착해서야 그 소리가 내게만 들리는 사라진 사람들의 언어라는 걸 나는 깨달았다. 아직 번역할 수 없는 먼 곳의 언어였지만, 뚜렷하게 감각되는 위로이기도 했다. (p.246) 어딘가에서 바람이 불어왔다. 습관처럼 손가락 끝으로 바람의 온도를 재보았지만 예전만큼 바람 속의 추위와 외로움이 걱정되는 건 아니었다. (p.246) 황정은, 「웃는 남자」 간단평 황정은은 늘 덤덤하게 말하는데, 사실은 무척 아픈 이야기들이다. 암굴과도 같은 공간에 스스로를 유폐시킨 이 소설의 주인공 역시 참 아프다. 그래서일까? 작가 노트에 쓰인 ‘건강하시길’이란 저 다섯 글자도 짠하다. 작가 노트 건강하시길 내 아버지는 건축된지 36년 된 아파트 5층에서 우울증을 앓고 있는 내 어머니와 살고 있다. 어머니는 종일 소파에 앉아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p.257) 아버지는 이제 늙었고 당신이 잘못했다는 말을 들으면 화를 내는 사람이 되었다. (p.259) 손보미, 「임시교사」 간단평 ‘후장사실주의자’들과는 또 다른 방식으로 끝없이 소설이라는 장르를 실험하는 소설가라는 생각이 든다. 독자들도 독자들이거니와 작가들이나 평론가들이 이 소설가를 사랑하는 이유가 거기 있지 않을까 이 소설도 이전에 세 번 정도는 읽은 것 같은데, 『그들에게 린디합을』이후 손보미의 행보를 계속 지켜보게 된다. 기왕이면 장편소설도 한 번 써보면 어떨까 싶다. 작가 노트 이 소설을 쓰는 내내 나는 ‘나쁨’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다. 이 외에도, 정소현의 「어제의 일들」, 백수린의 「여름의 정오」, 조해진의 「사물과의 작별」이 후보작으로 선정된 작품들이다.
한국 문학의 성취, 또 한 번의 진화
지금-여기의 우리를 증명하는 소설 12편

문학과지성사가 2010년부터 제정?운영해오고 있는 ‘문지문학상(구 웹진문지문학상)’이 올해로 5회를 맞이했다. 제5회 문지문학상 수상작품집 (문학과지성사, 2015)에는 수상작 윤이형의 「루카」를 포함하여 총 12편의 단편소설이 실렸다. 문학과지성사의 문지문학상은 한 달에 한 번씩 ‘이달의 소설’을 선정, 웹에(www.moonji.com) 그 결과를 공개하고 이를 문지문학상의 후보작으로 한다. 이 같은 방식을 통해 한국 문학이 가장 뜨겁게 달아오르는 동시대의 지점에서 젊은 작가들의 소설에 즉각적으로 반응하는 셈이다. 이미 여러 형태의 문학상들이 제도적으로 정착돼 있는 지금, 매달 문학과지성사의 선택을 대중과 공유하고 소통하며 문지문학상만의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문지문학상 수상 작가에게는 1천만 원의 상금이 주어지며, 시상식은 매년 5월 문학과사회 신인문학상 시상과 함께 치러진다. 심사위원(우찬제?이광호?김형중?강계숙?이수형?조연정?강동호)은 예심과 본심 동일한 구성원으로 진행되며, 자유로운 토론을 통해 수상작을 선정하고 있다. 2010년 봄, [웹진문지] 오픈과 함께 시작된 ‘웹진문지문학상’은 2013년 초 문학과지성사 홈페이지의 블로그와 웹진이 통합되면서 2014년 제4회 ‘문지문학상’으로 개칭되어 그 운영을 이어가고 있다.



심사 경위
심사평
수상 소감

제5회 문지문학상 수상작
2014년 8월 이달의 소설
윤이형_루카
선정의 말(강동호)

이달의 소설

2014년 3월 이장욱_ 기린이 아닌 모든 것에 대한 이야기
선정의 말(이광호, 강동호)

4월 정지돈_ 미래의 책
선정의 말(우찬제, 김형중)

5월 이상우_ 888
선정의 말(우찬제, 김형중)

6월 김덕희_ 급소
선정의 말(김형중, 강계숙)

7월 정용준_ 개들
선정의 말(이수형, 조연정)

9월 조해진_ 번역의 시작
선정의 말(조연정, 강동호)

10월 황정은_ 웃는 남자
선정의 말(우찬제)

11월 정소현_ 어제의 일들
선정의 말(강계숙)

12월 백수린_ 여름의 정오
선정의 말(우찬제)

2015년 1월 손보미_ 임시교사
선정의 말(이광호, 강계숙)

1월 조해진_ 사물과의 작별
선정의 말(우찬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