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이와 예술 그리고 상상력
처음 읽은 건 대학 때 였던 것 같다. 그땐 책을 사본 다는 엄두를 못내던 시절이니 이 책이 내 책장에 꽂혀 있는 이유는 회사를 다닐 때 구입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나에게<놀이와 예술 그리고 상상력>은 이번이 벌써세 번째.김훈이 말했던가, "노동은 신성하다"고. 하지만 또 누군가이런 얘길 했던 것 같다. 진짜 신성한 건 "놀이"라고.사람들은 돌이킬 수 없을 만큼 헝클어진 세상을 근거로 신을 부정한다. 신이 있다면 세상을 이대로 놔두지는 않았을 거라고. 나는 이 대목에서 사람들이 얼마나 신성을 오해하는지 깨닫는다. 신 이 성 스러운 이유는 아무 것도 하지 않기 때문 이다. 힌두교의 소(신)는어떠한 노동에도 기여하지 않음으로써 신성을 획득한다. 양반과 귀족의 조건은 땀 흘리지 않는 것이었다.혹자는 그럼 창세기에신이 한 행동은 뭐냐고 물을 것이다. 좋은 지적이다. 하지만 좀 더 멀리 봤으면 한다. 신은 어둠 속에서 깨어나 세상을 만들었고관리가 절실히 필요한 순간 되려 손을 떼고 질서가 무너지는 것을 바라보기만 했다. 이유가 뭘까?창조는 놀이 지만 관리는 노동 이기 때문이다.신이 칠흑같은 어둠 속에서 진행한 창조는 노동이 아니라 놀이였다.축제가모두 끝나고 나자 뒤도 돌아보지 않고 놀이 공원을 떠난 것이다. 신이 한 실수라면 놀이 공원을 나서면서 불을 끄지 않았다는 것. 그렇게 이 세계는 방치됐다.아!무료해진 신이 다시 놀이공원을 찾은 적이 꼭 두 번 있다. 한 번은 줄기차게 비를 뿌려 세상을 물바다로 만들었고 또 한 번은 자기가 아무 일도 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확인하려 만든 인간의 탑 을 무너뜨린 것이다. 이건 노동이 아니냐고? 천만에. 재미로 오줌을 싸개미굴을 무너뜨리는 아이를 떠올려 보자. 도미노를 쌓기 보다 무너뜨릴 때 손뼉을 치며 황홀해하는 아이를 떠올려보자. 창조가 놀이라면,파괴는 더 큰 놀이다.진실을 알고 나니 화가 나는가? 없으면 그냥 없어서그렇겠거니 하고 말 일이지만 있다면 탓하고 싶은 게 인지상정이다. 없는 줄 알았는데 있었다니,다 보고 있으면서 그 따위로행동하다니! 이 무책임한 신을 모욕하고 싶다면 부정하는 걸로는 부족하다. 부정은 그저 도피일 뿐,현실을 바꿀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나? 방법은 두 가지. 그를 죽이거나우리 모두,신이 되거나.신이 되는 법은 간단하다. 그가 칠흑같은 어둠 속에서 했던 것을 그대로 하는 것. 그러니까 우리, 힘 없고 비굴하고 미천한 인간들아 놀자.노는 것만이 우리를 신 으로 만들지니,놀고 놀고 또 놀아,우리 스스로,우리를 구원하자.
진중권은 상상력이 미학의 영역임을 선언하고, 놀이 라는 코드로 새로운 미학의 세계를 파고 들어간다. 상상력 혁명으로 도래한 사유의 특징을 비선형성·순환성·파편성·중의성·동감각·상형문자·단자론이라는 일곱 개의 키워드로 흥미진진하게 풀어가고 있다.
이 책에는 가로로 읽어도 뜻이 통하고, 세로로 읽어도 뜻이 통하는 , 다빈치 코드에 등장 했던 알파벳 철자의 순서를 바꿔 새로운 단어를 만드는 , 왜곡의 진리를 선물하는 , , , 등의 게임과 , , 등 20가지의 놀이가 등장한다. 이를 토대로 놀이를 하면서 상상력과 창의력을 재미있게 기를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고 있다. 또한 300여 컷의 그림과 곳곳에 숨겨진 크로스워즈 퍼즐을 통해 책 읽기 역시 즐거운 놀이가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아는 것이 힘 이었던 시대에서 상상력 이 힘이라 주장하는 진중권은 과거 공상 과학 소설에나 등장했던 허구들이 테크놀로지에 힘입어 점점 현실이 되어가고 있다고 말한다. 즉, 상상력 은 힘이 되고 미래의 생산력은 상상력에 기반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 책에서 미래의 힘 상상력 이 무엇인지 느껴볼 수 있다.
▷상상력 혁명
1.우연과 필연
주사위는 던져졌다-주사위
체스 판 위의 앨리스-체스
조커, 카드 밖으로 나오다-광대
2.빛과 그림자
자연의 자화상-카메라 옵스쿠라
빛으로 빚은 그림-라테르나 마기카
실루엣의 파노라마-그림자놀이
3.숨바꼭질
왜곡의 진리-아나몰포시스
얼굴은 풍경이다-인형풍경
거꾸로 본 세상-물구나무
4.수수께끼
끊어진 진주목걸이-애너그램
공간이 된 시간-아크로스틱
그림이 된 글자-리버스
5.사라짐의 미학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피크노렙시
세상이 사라졌으면-마술
6.순간에서 영원으로
키스처럼 덧없는-불꽃놀이
집시의 요술구술-만화경
무한히 두 갈래로 갈라지는 길-미로
7.다이달로스의 꿈
접기, 펼치기, 다시 접기-종이접기
인형의 꿈-오토마타
카오스 속의 코스모스-정리정돈
▷영원한 소년